코로나로 세상이 잠시 멈춘 듯하다
멋 곳을 바라보던 시선은 이제 가까운 주변을 살핀다
소중한 것들은 껴안아 챙기게 되고
싫어하던 것들을 기피하며 불확실한 것에 예민해진다
흑백의 잣대는 더 날을 세우고 세상을 갈라낸다
주변의 싫어하던 것들을 다시 본다
흑백 색안경을 벗고 가만히 관찰하며
누구 혼자 벌인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오랜 기간 공동의 합작이었다
싫은 것을 부정하기만 하고 기피하기만 한다면
그건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하며
앞으로도 긴 세월 우리 곁에 남아 있겠구나
내 눈에 기형인 듯, 혐오스러운 그것들을 잠잠히 바라보고 관찰하고
현상과 구조, 그 맥락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이 시대에 바람직하다 할 것을 체계적으로 재완성할 수 있겠다
그래야 새로운 시작을 말할 수 있다.
연희동 #5 | 전신주 (170x240mm Hahnemuhle Britannia 300gsm Rough; Pigment pen and Nip pen, India Ink, Winsor & Newton Watercolor)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28길 주택지 내부에 있는 전신주. 다섯 갈래 골목길에 세워져 각종 전기, 통신 선로 외에도 6개의 CCTV와 골목길 이정표, 방송스피커까지 매달려 있다. 불법 쓰레기 투기와 무단 주차도 늘 벌어지고 있는 지점. 처음엔 전신주이기에 한국전력이 그 원인자라고 치부했지만 가만히 관찰해보니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각 통신사, 구청, 케이블방송사, 인근 주민 등 여러 행위자들이 한 지점에 집단적으로 덧 씌운 결과인 것.
혐오스런 전신주를 바라보며 이 사회 곳곳의 불미스런 양상들,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 이해하기 어려운 세대의 문제들도 이러한 방식으로 벌어진 것이 아닐까란 생각으로 확대 해석되었다. 이 그림을 그리며 잠잠히 생각했다. 우리 주변에 내가 외면한다해서 사라지지 않는 것들은 잘 관찰해야하고 이해를 깊게 해야만 제대로 된 개선책을 말할 수 있겠다.